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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유는? (분쟁 원인)

by 에이스토리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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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의 역사는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시온)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시오니즘운동에서 시작합니다.

 

이 운동으로 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아랍인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고,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즉, 아랍 측에 대해서는 맥마흔선언, 유대인 측에 대해서는 밸푸어선언을 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유대인의 정착과 이산, 그리고 시오니즘

기원전 15세기경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온 유대인은 BC997년 다윗왕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외세에 의해 망하고 유대인들은 식민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기원전 100년 무렵엔 로마의 속령이 되어 지배를 받으면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제1차 유대전쟁을 일으켰으나 AD70년 로마에 패하면서 예루살렘이 정복당했으며 신전도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135년 제2차 유대전쟁에서도 패하여 유대지역은 황폐해졌고 유대인은 세계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디아스포라(이산)’라고 합니다.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은 637년 이슬람교 아래 단결한 아랍인들이 로마를 격파했으며, 16∼20세기 초에는 오스만제국이 점령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함께 있는 복잡한 종교적 지역이 되었습니다.

 

터키령이었던 팔레스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터키가 패하면서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들어 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하던 유대인은 국가 건설의 예정지를 성서에서 약속한 땅 팔레스타인으로 정했습니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시온산은 이들의 국가 건설 상징이었으므로 시온산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을 전개하며,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시오니즘에 의한 유대인의 이주가 계속 증가하자 아랍인의 유대인 배격운동이 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1차 대전 중인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벨푸어선언'을 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내 유대인의 환심을 사 미국을 1차 대전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1차 대전 당시 독일 편에 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하면서 향후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1~4차 중동전쟁

1930년대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이 증가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유대인 이주자가 팔레스타인 인구의 31%,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의 5.67%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해 아랍인들과 시온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은 이 문제를 국제연합에 일임하였습니다.

 

그 결과 1947년 10월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 48%와 유대지구 52%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가결했으며, 이스라엘 성립이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니즘 운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아랍민족의 독립을 반대하고 아랍주민을 쫓아내어 오직 유대교도만으로 나라를 이루려는 유대인들의 건국운동이므로, 팔레스타인 내 아랍 주민을 배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이 선포되었고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레바논 등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의 독립 선포와 동시에 이를 거부하고 선제공격을 가함으로써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제1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유대인은 본래 유엔 분할지역보다 50% 많은 지역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4년까지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중동 지역의 갈등과 팔레스타인인의 저항

분쟁이 끝이지 않던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은 19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체결로 숨을 돌리게 됩니다.

 

즉, 1979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재 속에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총리 간에 '캠프데이비드 협정'이 체결되면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아랍국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도 시리아로부터 빼앗아 점령하고 있던 골란고원의 반환을 거부해 갈등은 더욱 심화됐습니다.

 

한편,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1964년 결성된 비밀저항조직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세계 곳곳에서 테러 등으로 대이스라엘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스라엘도 1982년 레바논 PLO 본부를 습격하면서 1960년대 이후 양측의 유혈사태는 계속됐습니다.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인 반이스라엘 투쟁인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이후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평화를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PLO는 1993년 9월 영토와 평화의 교환을 원칙으로 한 '오슬로평화협정'을 체결, 팔레스타인자치국 건설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1994년 7월 1일에는 아라파트 PLO 의장이 가자 자치지구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7월 5일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1997년 3월 팔레스타인에 강경 입장을 고수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동예루살렘지역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팔레스타인 측도 과격 이슬람단체들이 협상을 거부하면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테러를 잇따라 감행, 협상은 위기국면에 다시 빠지게 됐습니다.

 

이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중재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간에 평화협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1998년 10월 23일 영토와 평화의 교환 협정의 마지막 쟁점들을 해소하고, 최종 협정문안을 작성했습니다.(와이리버 협정)

 

그러나 동예루살렘의 주권을 서로 가지겠다고 주장하는 양측의 대립이 결정적 걸림돌이 돼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고,

 

2000년 9월 28일 아리엘 샤론 리쿠드당 당수가 동예루살렘 내 이슬람성지를 방문하면서 평화협상은 파국을 맞게 되었습니다.

 

 

 

중동평화 로드맵 수립

2003년 4월 미국과 유엔,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유혈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동평화 로드맵'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9월 12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돼온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이 38년 만에 종식됐습니다.

 

하지만 정착촌 철거를 선언한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가 극우파인 리쿠드당의 반발을 샀고, 이 상황에서 2006년 1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총리 임무 수행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2월에 극우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새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중동전쟁(1967년) 이전의 영토를 반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이유로 협상할 수 없으며 또한 수도 예루살렘의 분할 역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네타냐후가 2011년 9월 동예루살렘에 대한 종전의 정착촌 건설 중단 조처를 연장하지 않자 협상을 즉각 중단했으며, 이를 둘러싼 양측 간 갈등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2012년 11월 14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를 미사일로 공격, 최고 군사령관 아흐마드 알 자바리를 폭살하는 등 가자지구에서 8일간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교전으로 160여 명의 사망자와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양국 간의 중재 결과 휴전 합의를 이끌어 냈으나, 두 나라는 여전히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느 때라도 무력 충돌이 재발할 수 있는 갈등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 약사

시오니즘(zionism, 19세기 후반~)

중ㆍ동유럽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1933년까지 팔레스타인에 23만 8,000여 명의 유대인이 모여들어 아랍인의 반발을 샀습니다.

 

 

 

밸푸어 선언(1917년 11월)

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J. 밸푸어(Balfour)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national home)' 건설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한편으로 1차 대전에서 독일 편에 서있던 오스만제국 내의 아랍인들의 반란을 지원하면서 아랍인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맥마흔 선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밸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언을 동시에 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물론 중동전쟁의 불씨를 만들었습니다.

 

 

 

유엔 결의 181호(1947년 11월)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분할하여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를 창설하고, 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국가를 수립했으나 아랍인들은 이 결의를 거부하였습니다.

 

 

 

6일 전쟁(1967년 6월)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 대해 기습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와 가자지구, 요르단의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시리아의 골란고원 등을 점령하였습니다.

 

 

 

10월 전쟁(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했으나, 6일 전쟁 때 잃은 영토를 되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ㆍ이집트 평화조약(1979년 3월)

미국 카터 대통령의 중재로, 이집트가 아랍국 중 최초로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양자 평화조약에 서명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였습니다.

 

 

 

1차 인티파다(1987~93년)

이스라엘 점령 20년을 맞은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억압 통치에 대해 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투쟁의 결과 팔레스타인인 1,000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오슬로 협정(1993년 9월)

당시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상호 실체를 인정하고 ▷테러 중단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립 ▷가자지구와 예리코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5년 내 추가 철수 등을 규정한 협정에 서명하였습니다.

 

 

 

가자ㆍ예리코 자치협정(199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에 체결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예리코시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치에 관한 협정입니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립(1996년 1월)

오슬로 협정의 결과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의 선거로 팔레스타인 자치의회가 구성되고, 아라파트가 수반에 당선되었습니다.

 

 

 

와이리버 협정(1998년 10월)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부 수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간에 '땅과 평화의 교환'으로 불리는 와이리버 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2차 인티파다(2000년 9월~)

팔레스타인 최종 지위 협상이 지연되고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 샤론이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자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살 폭탄 테러 등 극단적인 투쟁 방식으로 저항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 1397호(2002년 3월 12일)

팔레스타인을 사상 처음으로 국가로 명시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안전하고 공인된 국경 안에서 공존하는 비전을 지지한다.'라고 결의하였습니다.

 

 

 

사우디 평화안(2002년 3월 28일)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 전쟁 때 점령한 땅에서 철수하면 아랍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가 제안한 새로운 포괄적 평화안을 아랍 22개국 정상회담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습니다.

 

 

 

중동평화 로드맵 서명(2003년 6월 4일)

미국ㆍ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은 2005년 6월 4일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동평화 로드맵'에 서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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